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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박래군 (첫 번째 서평)

모두의 ROOM 2025. 3. 2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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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인권 운동가 박래군의 한국 현대사 인권 기행

작가 : 박래군

역사는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고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조금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리라는 지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역사에 관한 책을 읽을 땐 같은 사건을 다룬 다른 시각의 책을 두 권 이상 읽으려고 합니다. 그래야 치우치지 않고 자신만의 시각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이번에 제가 읽은 책은 인권 운동가 박래군 님이 30년간 활동하며 직접 찾아다닌 역사적 현장들을 인권의 시각에서 펼쳐 낸 답사기입니다. 기존의 역사서가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됐다면 이 책은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 집중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조심스레 쫓아보며 두 번에 나눠 서평을 올리려고 합니다.


 

학살과 해원의 섬 ㅣ 제주 4.3 현장

첫 번째 이야기

귀신 잡는 해병대.

그들이 귀신을 잡을 정도로 강해진 건 죽지 않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살고 싶었으니까요.

해병대 신화를 만든 초창기 해병대 주력... 제 주민들이 국가에 충성한 것은

폭도와 좌익이라는 누명을 벗고 당당한 국민으로 인정받으며 살고 싶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4.3이란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처절하게 산 사람들의 이야기...

제주 4.3 사건...들어는 봤지만 정확하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몰랐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되기까지 철저한 금기어였기 때문입니다.

4.3 사건에 대해 이야기만 해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던

분위기가 바뀌게 된 건 2000년 특별법이 재정되면서부터입니다.

그제야 방송과 소설을 통해 제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알게 됐습니다.

어떤 이들은 4.3 사건의 배후에 북한과 연루된 남로당이 있다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평범한 이웃이었고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딸이고 아들이었습니다.

변뱅생 모녀 조각상 <비설>

1949년 1월 6일, 토벌대가 쳐들어온다는 말에 두 살배기 딸아이를 둘러업고 급히 도망쳤다.

하지만 쫓아오던 토벌대에 발각되었고, 곧 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일어나 아이를 품에 안고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그러다 그만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추위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억울하게 죽은 게 아니다

죽어서 아무런

이유가 없어져 버린 것이

억울한 것이다!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교과서에 실리지 못 한 희생이 얼마나 더 있는지 모릅니다.

모른다고 해서 없던 일도 몰라야 하는 일도 아닙니다.

죽었다고 이유가 없어져 버려서는 안됩니다.

시각에 따라 역사의 해석을 달리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 있다는 건 기억해야 합니다.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ㅣ 전쟁기념관

두 번째 이야기

전쟁을 기억한다는 것은

전쟁의 상처에 대한 성찰과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다짐...

전쟁을 기념한다는 말은

승리한 전쟁, 전쟁의 영웅 등을 기린다는 뉘앙스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을 기록하고 있는 전쟁 기념관에서

가장 깊이 있게 다루는 전쟁은 단연 6.25입니다.

북한의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이 어떻게 전개됐으며 얼마나 치열했는지

영토를 빼앗고 되찾고는 반복하는 과정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의 업적이 차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작가는 생각할 거리를 던집니다.

치열한 전투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시민들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폐허가 된 도시를 고쳐주고, 구호물자를 날라다 준

미국과 국군의 모습이 따뜻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절정은 유엔군의 희생으로 자유 대한을 지켰고

그렇게 자유진영으로 가난에서 벗어난 대한민국이

이제는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가 됐음에 감사합니다.

유엔의 도움을 받은 것도

한강의 기적을 일으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것 모두 사실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전쟁의 과오도 있다고 합니다.

베트남 전쟁 중 한국군은 격벽청야 작전을 펼쳤습니다.

베트남 밀림 속 기지를 짓고 그 주변을 모두 태워 인근 마을까지 모두 없애는 작전이었습니다.

베트콩과 베트남 민중에게 한국군은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던 반면

우리는 한국군 부대의 승리와 그곳 주민을 도운 선행을 우선시 했습니다.

작가는 전쟁의 어두운 측면을 감추고 민간인 학살을 의도적으로 배제했음을 지적합니다.

전쟁을 기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아 있는 자들이 죽은 사람들의 생명에 진 빚을 엄숙히 하는 일이다...

군인의 죽음과 민간인의 죽음을 분류하는 일이 아니라

모든 죽음에 대한 경건한 마음가짐이다

정기용 '서울 이야기' 중에서

기억과 기념

그 차이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기억하지 않으면 기념할 수 없고

기념함으로 기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는 전쟁기념관에서 기념은

승자와 영웅을 위한 기록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서너 번 방문했던 기억을 되짚어보니

작가의 말이 일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모습과 그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예 없진 않았습니다.

다만 이념이란 명목하에 자행됐던 학살을 본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전쟁기념관의 전시의 방향을

그릇됨으로 표현하고 싶진 않습니다.

분명,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이 땅에서 자유와 평등이 얼마나 소중한지...

사람은 사람이기에 존중받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전쟁의 영웅 덕에 우리가 지킨 사람의 가치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며

전쟁으로 무고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외딴섬에 살았던 사람들 ㅣ 소록도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병이 발병했을 때,

죽은 뒤 시신이 해부될 때,

화장될 때 이렇게 세 번 죽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병... 문둥이로 더 익숙한 한센병 환자들입니다.

병에 걸렸단 이유만으로 소록도라는 섬에 감금돼 평생을 살다 떠난 사람들...

한센병은 감염 경로가 정확하지 않고 전염력도 미약하며 유전도 되지 않음에도

사회가 그들을 격리하게 된 것은 인종주의 논리가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17세기에 사라진 병이지만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 사이에선 아직 유행하는 것을 본 제국주의 유럽 국가들은

우생학을 들먹이며 격리시설을 짓고 사회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한센병 환자들을 가두었습니다.

감염되지 않은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격리되어 관사 지대 보육원에서 지내며

한 달에 한 번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만 봐야 했습니다.

유전이 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임신한 아이를 사산하게 하고

성인 남자들은 거세를 당했습니다.

치료와 보호를 한다는 명분 아래 소록도를 관리하던 사람들은

토목 공사와 간척 사업으로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했습니다.

사회에서 격리돼 착취를 당하면서도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그들에게 희망은 종교였습니다.

마을마다 교회가 있고 중앙마당엔 성당과 원불교 교당이 있습니다.

하루 세 번 예배를 드리며 누구보다 간절한 바람이 있는 사람들... 그들이 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며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한하운 , '전라도 길-소록도 가는 길' 중에서

일본식 운동화인 지까다비...

신을 벗다가 발가락이 없어질 정도의 고통을 감내하고도

꼭 가야만 하는 길

그들에게 소록도는 감옥이자 병원이었습니다.

죄 없이 감옥으로 향하는 억울함과

병을 고치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이 공존했겠죠.

하지만 그들을 기다린 건

멸시와 경멸 어린 시선이었습니다.

어쩌다 이런 병에 걸렸는지

왜 하필 나인지

억울했겠지요.

그런데 정말 억울한 건

발병 초기 적절한 치료를를 받으면 평생 아무런 후유증 없이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간척 사업으로 생겨난 수익을 그들의 치료비로 사용했다면 어땠을까요?

전염력도 낮고 유전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금 더 빨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다면 어땠을까요?

소록도 사람들 이야기를 읽으며

코로나19 사태가 떠올랐습니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놀란 사람들은

병에 걸린 사람들을 피하기 급급했습니다.

시시각각 감염자 경로가 공개됐고

중국에서는 아파트 전체를 셧다운 하는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동양인 차별이었습니다.

중국에서 발병했다는 이유로

동양인을 향한 공격은 나날이 심해졌고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진 지금도 그 차별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병에 걸렸단 이유로 범죄자 취급을 받은 사람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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